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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평화를 찾아서
번 호 : 6205 | 조회수 : 131 | 작성시간 : 2018-06-12 | 글쓴이 : 김선호
요즘 최대 관심사는 북미정상회담과 6.13 지방선거가 양분한다. 당장 내일모레로 다가온 둘 모두 기사도 계속 접하고 사전투표도 했지만, 둘 모두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 당장 내가 마주한 일인데도 마치 남 일 같기만 하다. 북미정상회담이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둘러싼 분위기에서는 평화가 근처로 다가온 것처럼 들떠있다.
우리는 꽤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정규 수업시간에 비록 그 비중은 작을지라도 통일에 관한 교육을 받는다. 통일되었을 때의 경제적 이익이나 국방비, 통일비용에 관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그 상에서 평화의 가치는 논하지 않는다. 한시적인 평화와 완전한 평화. 경제적 이익과 비용은 물론 저 평화의 상태에서 파생되는 것들에 대한 시장 가격이다. 그러나 평화의 부가가치는 가르치면서 평화 그 자체의 가치는 가르치지 않는다. 배워왔던 평화는 일단 옳고 좋은 것이다. 그 이유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는 여성이다. 따라서 군대에 가지 않으므로 전쟁이 난다고 한들 최전방에서 직접 총구를 겨눌 일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직접 목숨에 위협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쟁을 피해 안전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을 것을 안다. 한국전쟁 때 이승만 전 대통령이 부산으로 내려가며 한강 다리를 끊었다. 더 옛날로 가서 임진왜란 때는 선조의 피란길에서 백성들은 버려졌다. 그 사실을 아는 한 내가 전장에 서지 않는다고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도 할 수 없으며 남 일인 양 바라볼 수도 없다. 유사시에 행해질지도 모르는 모든 폭력에도 무력하다.
군복무기간이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내가 겪지 않는다고 20대 초반을 군대에서 보내게 되는 그들의 청춘이 아깝지 않을 리가 없다. 유사시에 그들이 전쟁터에 내몰리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분단비용을 배우면서 이 기회비용에 대해서도 배우기는 한다. 평화비용도 통일비용에 대해서도 배운다. 유·무형적 가치라고 하면서 평화의 가치는 비용과 편익에 대해서 매겨진다. 내가 의문이 드는 것은 이 지점이다. 평화 그 자체의 가치를 배제하고서 그 부가가치를 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평화의 가치를 비용으로 환산하지 않고서는 평화를 가르칠 수가 없는 것일까?
물론 분단비용과 평화비용으로는 주로 평화가 없을 시의 손해를, 통일비용으로는 평화의 이익을 가르친다. 그런데 이러한 손익 계산은 국가 단위로 이루어지며 당사자가 아닌 개인에게 직접 다가오는 것은 있을지도 모르는 증세와 갈지 안갈지 모르는 군대의 존속 여부 정도다. 통일에 부정적일 수는 있다. 나 역시 통일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러나 평화는 다른 문제다. 나는 수업 시간 안팎에서 통일은커녕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또래 애들이나 사람들을 보아왔다. 어릴 적부터 통일이건 평화건 시간을 들여 교육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효과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바라는 사람이 없는 평화는 무의미하다. 평화는 갈등 당사자들의 노력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진심이든 아니든 바라지 않는데 그것을 위해 노력할 리 만무하므로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내가 평화를 바라는 이유는 결국 내 일신의 안위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정치·경제·군사적 편익이나 사회·문화적 편익 같은 것들은 내게 큰 의미가 없다. 내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바람이 저들과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평화의 가치를 느낀 것은 정규 교육에서는 아니다. 갈등이 없고 평온한 상태가 왜 유지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답을 내놓기 전에는 초·중·고등학교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 양상은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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